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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주 사람도 궁금한 성주참외 이야기 7
작성자 참외향기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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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0-05-17 1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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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근 씨. 문 씨는 성주참외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등을 구수하게 풀어냈다.문상근 씨. 문 씨는 성주참외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등을 구수하게 풀어냈다.
노근초 씨. 노 씨는 철근하우스와 성주참외원예조합 설립 등에 얽힌 이야기를 전했다.노근초 씨. 노 씨는 철근하우스와 성주참외원예조합 설립 등에 얽힌 이야기를 전했다.

<7> 원로가 들려주는 생생한 성주참외 이야기

경북 성주군이 '명품 성주참외'로 이름을 떨치기 훨씬 이전에는 수박으로 유명했다. 지금 성주군 전역을 뒤덮고 있는 참외하우스가 50년 전에는 수박밭이었다. 이런 성주가 반세기만에 수박 주산지에서 참외의 고장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팔순의 두 원로는 "명품 성주참외에는 참외농민의 숱한 노력과 애환이 서려있다"고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들은 지금도 억대 소득을 올리는 성주참외 재배의 산증인이다.

◆문상근 씨 "선생님은 나보다 2년 앞서"

성주군 초전면 문상근 씨는 1972년 2천여㎡(600평) 노지 은천참외를 시작해 자타가 공인하는 초전면 참외 상업재배 1호다. 문 씨는 "(내게) 기술을 전수해 주신 성주읍 연산마을 고 백준현 씨는 (나보다) 2년 먼저 참외 재배를 시작했다"고 했다. 성주군이 1970년 성주읍 연산리 고 백준현 씨의 노지 은천참외 재배를 성주참외 상업 재배의 시작으로 보는 근거다.

47년 전, 당시 수박농사를 하던 문 씨는 야간열차를 타면서 참외 재배를 결심하게 됐다. 수박 팔러 서울 청량리 청과시장에 갔던 그는 하행열차에서 만난 칠곡 석적에서 참외를 재배하는 한 농민에게서 참외 재배 권유를 받았다. 문 씨는 "그분이 참외 12박스가 8t차 수박 한차와 돈이 맞먹는다며 수박 대신 참외를 해보라고 했고, 이듬해 수박과 함께 노지 참외 3골을 심었다"면서, "우리 집에서 연산마을까지 거리가 상당한데, 참외 기술 배우러 밤마다 자전거 타고 아래채 사랑 드나들듯 했다"고 회고했다.

◆박정희 대통령 "어디서 온 참외인가?"

성주참외는 호박대목 접목을 통한 품질 향상과 생산량 확대로 전국 참외시장을 주름잡는 기틀을 마련했다. 접목 필수품인 접목집게에 얽힌 사연은 눈물겹다. "백준현 씨께 배울 당시 그분이 대나무를 쪼개 다듬고 화롯불에 쬐어 2개를 겹쳐 한쪽에는 고무줄을 매고 다른 쪽에는 홈을 내어서 집게로 사용하는데 참 어렵더라. 생각 끝에 짚풀의 얇은 껍질을 물에 적셔 접목 부위를 감았더니 10포기 중 7포기가 살더라. 이후 불빛이 어른거리는 창호지 바른 문을 보다 아! 이걸로 하면 되겠구나. 문종이를 물에 적셔 해봤는데 멋지게 접목에 성공했지!"

문 씨는 1976년 자신이 생산한 참외를 가지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중간소개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했다. 문 씨는 "당시 내 참외가 이병철 회장 골프장에 납품됐는데, 박 대통령이 이 회장에게 '이 참외가 유별난데 어디서 온 참외인가' 물었고, '경북에서 온 참외입니다'고 답하자, 대통령이 '청와대에 그분을 한번 모셔와 봐라'해서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난 거다. 그때 대통령이 '뒷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하드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유기농을 해보라고 권했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시행착오 통해 얻은 참외재배 기술

노근초 씨는 성주 선남면 철근하우스 참외 재배 1호다. 노 씨는 1975년 4천㎡(1,200평)에서 노지 은천참외를 재배했다. 1978년 대나무하우스, 1981년 철근하우스 10동(6,600㎡) 참외농사를 했다. 그는 "1964년 제대해서 수박농사를 짓다가 10여년 후 성주에 참외 바람이 불기시작하면서 참외농사로 바꿨고, 주변 친구들도 다 수박농사 짓다가 1, 2년 사이 참외로 바꾸었다"고 했다.

노 씨는 "지금은 성주참외조합이지만 그때는 원예조합이었다. 내가 제일 먼저 조합원 가입을 했다. 참외하우스는 처음에는 대나무로 하다가 조합에서 보조 받아 철근하우스를 했다. 당시 같이 철근하우스를 시작했던 친구들은 대구로 나가거나 참외농사를 그만 뒀다"고 전했다.

"그때는 참외 재배 기술을 배우지도 않았고, 배울 곳도 없었다. 교육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접목도 수정시키는 것도 입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우리끼리 시행착오 겪으면서 했다. 성공하면 막걸리로 서로 기뻐했고, 실패해도 막걸리로 위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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