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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작성자 다 빈치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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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06-09-19 0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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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1
▲레오나르도가 설계한 기계 날개. 날개가 움직이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천재의 위대한 발명품을 찾아서

소설‘다 빈치 코드’는 파리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7%E7%BA%EA%B8%A3+%B9%DA%B9%B0%B0%FC&nil_profile=newskwd&nil_id=v14074457"
target=new>루브르 박물관
의 살인사건으로 시작되는 역사 스릴러다.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7%B9%BF%C0%B3%AA%B8%A3%B5%B5+%B4%D9+%BA%F3%C4%A1&nil_profile=newskwd&nil_id=v14074457"
target=new>레오나르도 다 빈치
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 감춰진 비밀 코드가 단서의 첫 실마리를 던지고,수수께끼의
실타래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동안 진리와 허구,배반과 음모가 반전을 거듭한다. 다 빈치 코드는 자칫 밋밋해지기 쉬운 역사 다큐멘터리를
추리기법으로 얽고,멀미가 날만큼 긴박한 속도감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복선으로 깔아둔 레오나르도의 미술작품이 소설의 기품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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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무기를
발명한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는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를 그린 르네상스 이탈리아 최고의 거장이다. 그러나 작업실에
앉아서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고,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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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직접

스케치한 연발대포의
설계도면.
자전거,자동차,잠수함을 발명하는가 하면 비행기,
글라이더,헬리콥터,낙하산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물속에서 두 개의 관을 통해 공기를 흡입하며 간단한 음식도 섭취하고 오줌도 누며 며칠씩
견딜 수 있는 개인 잠수장치도 고안했다. 잠수 특공대는 물속을 평지처럼 걸어 다니면서 정박해 있는 적함에 접근해 뾰족한 드릴로 배의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침몰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소금쟁이를 흉내 내서 물 위를 걷는 신발도 발명했다. 소금쟁이가 다리의 가느다란 털
사이에 붙은 공기방울의 부력을 활용한다면 레오나르도의 발명품은 공기주머니를 발목에 비끄러매고 첨벙거리면서 걷는 원리였다. 물론 가벼운 막대를
이용해서 몸의 균형을 잡고,경보선수처럼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레오나르도의 발명품을 꼽아보면 모두
70가지가 넘는다. 그 가운데는 방적기,인쇄기,곡면 거울 연마기,굴삭기,말뚝 박는 기계,강바닥을 고르는 준설선,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F%DC%B7%FB%BC%B1&nil_profile=newskwd&nil_id=v14074457"
target=new>외륜선
,주행기록계와 같은 산업용 기계장치도 있지만,전쟁무기로 투입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발명품도 꽤
많다.

성을 공략하기 위해 해자(垓字,땅을 파서 도랑처럼 만든 성의 경계)의 물을 끌어올려 빼는 양수기는 원래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E%C6%B8%A3%C5%B0%B8%DE%B5%A5%BD%BA&nil_profile=newskwd&nil_id=v14074457"
target=new>아르키메데스
가 버드나무를 깎아서 만든 장치를 개량한 것인데,레오나르도는 지름을 줄인 호스를 여러 개
묶는 방식으로 흡입력을 강화했다.

양수기뿐 아니라 투석기,낙하산,경량형 대포 등도 예전에 쓰던 장비의 결함을 고쳐 성능을 크게
높였다. 기존 대포는 화력이 좋지만 너무 무거워서 방향과 비거리 조작이 힘들고 불발이 잦았는데,레오나르도는 구경이 작은 포신을 부챗살 모양으로
여러 개 이어 붙인 신종 연발대포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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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신의
지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이유는 둥근 공 모양의 구형 포탄을 물고기 모양의 유선형 포탄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간단한 크랭크
조작만으로 포신의 방향을 상하좌우로 조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전과 격발이 연속으로 이뤄져서 연발공격의 위력까지 더할 수
있었다.

경량형 대포의 가장 큰 장점은 무게가 가벼워 소형 함선에 탑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해상전투에서 몰려오는 적함에
대응하는데 진가를 발휘했을 것이다.

권위에 굴하지 않은 창조성

그런데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레오나르도가
전쟁무기 설계와 제작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어딘지 이상하게 들린다. 더구나 그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에다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어서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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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석기_엄청난 힘으로 돌이나 화약을 넣은 물건을

멀리 발사하는 전쟁무기. 스프링의
힘으로 작동한다.
16세기 이탈리아 예술가였던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가 쓴 레오나르도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는 무척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에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현악기 연주를
즐기며 소년들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이것도 끔찍한 대량살상무기를 눈 깜빡하지 않고 뚝딱 만들어내는 전쟁광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수많은 예술가 가운데 레오나르도만큼 예술과 삶이 자기모순으로 뒤엉킨 사례는 다시 찾기 어려울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수기를 훑어보면 섬뜩할 만큼 예리하게 자연을 관찰한 예를 종종 엿볼 수 있다. 갈릴레오보다 앞서서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별 것도 아니라는
듯 노트 한 구석에 끼적거려놓는가 하면,난파선에서 떼죽음 당한 사람들의 얼굴과 손금을 일일이 비교한 다음 ‘관상이나 손금이 운명을 말해준다는
예언가와 관상쟁이는 모두 엉터리 사기꾼’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의 기록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회화론으로 알려진
‘바티칸 코덱스’(Vatican codex)다. 이 가운데 빛과 어둠에 관한 관찰이 가장 압권인데,레오나르도는 ‘빛은 어둠의 부재’,그리고
‘어둠은 빛의 부재’라고 정의한다. 미술의 역사에서 이보다 더 충격적인 발언은 없었다. 잘 알려진 대로 미술에서 빛은 단순한 명암의 요소가
아니라 오랫동안 선(善)과 정의,그리고 절대적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군림했다. 빛에 종교적,도덕적 가치를 부여해 온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최후의 만찬’을 그린 종교화의 거장이 빛과 어둠에 관한 미학적 가치중립을 선포했다. 이것은 어떤 권위의 눈치도 살피지 않는,
색채와 조형의 당당한 독립선언이다.

권위와 타협하지 않기는 그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밀라노를 통치하던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D%BA%C6%F7%B8%A3%C2%F7&nil_profile=newskwd&nil_id=v14074457"
target=new>스포르차
의 요구를 받아들여 살상무기를 설계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새로운 기계적 작동원리의
구현에 있었다. 세속의 권위는 그의 자유로운 발걸음을 구속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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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화가
레오나르도는 예술의 제단에 삶을 투척하는 것을 신성한 의무로 삼았다. 그렇다면 회화의 거장 레오나르도가 전쟁무기의 디자인에 몰두했다는 사실도
천재의 자유로운 상상력의 구현이란 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실패한 비행,과학의 시대를
열다


레오나르도는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 교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우주의 제단에 자신의 천재성을 헌정한
르네상스적 ‘보편인’(uomo universale)이었다.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C5%E4%B8%B6%BD%BA+%BE%C6%C4%FB%B3%AA%BD%BA&nil_profile=newskwd&nil_id=v14074457"
target=new>토마스 아퀴나스
의 스콜라 신학보다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E%C6%B8%AE%BD%BA%C5%E4%C5%DA%B7%B9%BD%BA&nil_profile=newskwd&nil_id=v14074457"
target=new>아리스토텔레스
의 기계론에 더 이끌렸던 레오나르도는 삼라만상과 자연을 정교한 톱니바퀴가 맞물려서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장치라고 봤다. 전쟁기계를 구상하면서도 살상능력의 효율성보다 구동 메커니즘의 원리를 이해하고 구현하는 것이 그의 진정한 관심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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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비행 장치다. 자연을 예술과 기예의 어머니로 삼았던 그는 지느러미를 날개삼아 물을 차고 오르는 날치와,근육의
힘만으로 날개를 움직이는 박쥐를 비행 모델로 삼았다. 그밖에도 잠자리,파리,비둘기,매,수리 등 자연에서 관찰할 수 있는 모든 날짐승의
비행방식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레오나르도는 날갯짓을 통해서 인간의 몸뚱이를 공중에 띄울 수 있다고 믿었다. 지렛대를 이용한 비행
날개 실험에서 “200파운드(약 91kg)의 중량을 들어 올리려면 날개 길이가 20m가 돼야 한다”고 적은 기록에서 그의 확신이
엿보인다.

그러나 레오나르도의 비행 시도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만다. 실패의 원인은 양력의 원리에 무지했던 탓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박쥐가 날아오를 때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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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펼쳐 아래로 후려치는 순간 날개 아래에 고여 있던 공기가 아래로 이동한다. 이때 날개를 다시 위로 올리면 순간적으로 날개 밑에 진공 상태가
발생하는데,비어 있는 곳을 메우기 위해 주변의 공기가 밀려들어오면 그 힘에 의해서 박쥐의 몸통이 둥실 떠오른다.”

그는 날개를
아래로 쳐 공기를 밀어내면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날개 위를 지나는 공기 흐름이 아래를 지나는 공기의 흐름보다
빨라서 기압차가 생겨야 위로 뜨는 힘,즉 양력을 얻을 수 있다. 지금 관점에서는 한심한 결론이지만,인류가 양력의 원리를 이해하고 비행기를
처음 발명한 것은 무려 400년 후의 일이다. 레오나르도의 순진한 오류를 무조건 비난하기는 어렵다.

끝없는 도전,거듭된 절망,
불굴의 투혼으로 점철된 그의 떠돌이 삶은 새천년 디지털 노마드(nomad) 시대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손색이 없다.

비행에 실패한
레오나르도는 곧 활강으로 관심을 돌린다. 레오나르도의 설계 중 무동력 활강 글라이더는 인체 동력을 이용한 일체형,관절형 비행장치보다 나중에
나온 작품으로 보는 것이 옳다. 하늘을 나는 꿈은 인간이 창조주의 능력에 맞서려는 태곳적부터의 도전과제였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테네의
명장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4%D9%C0%CC%B4%DE%B7%CE%BD%BA&nil_profile=newskwd&nil_id=v14074457"
target=new>다이달로스
가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어깨에 걸고 크레타를 탈출하는 장면은 레오나르도가 도제 생활을 했던
피렌체의 대성당 종탑 부조에도 새겨져 있을 만큼 잘 알려진 주제였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레오나르도의 비행기계는 신화의 세계에
종지부를 찍고 과학의 시대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미신과 맹목의 시대를 지나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인간이 올림포스 신들의 황금 구름을 넘보기
시작한 것이다.

다 빈치 노트에 숨은 절망과 도전

레오나르도가 왼손으로 꾹꾹 눌러 그린 설계도와 비싼 종이
값을 절약하기 위해서 깨알같이 적어 넣은 작동설명서는 되풀이된 절망과 도전의 증거다. 실제로 레오나르도의 설계도 대부분은 지우고 고친 흔적
때문에 알아보기 쉽지 않다. 게다가 남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자신만의 비밀 잠금장치를 삽입했기 때문에 그의 설계도를 원안
그대로 만들었다가는 기계장치가 망가지거나 작동불능이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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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훔쳐본 레오나르도는 거대한 지렛대로 우주를 들어 올리려고 한 아르키메데스에 대해 존경 어린 질투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레오나르도는 아르키메데스를 본떠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와 권양기를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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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륜선_바람개비 모양의 바퀴를 양쪽에 달아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개선했다. 손이나
발을

이용해 큰 바퀴를 움직이면 노를 저을 때보다

더 일정한 속도로 쉽게
나아간다.
자연을 진리의 사표(師表)로 삼았던 그는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하는 생명과 움직임의 원리를 스프링과 태엽으로 환원한다. 이것은 놀라운 발상이었다. 자연의 들숨과 날숨,밀물과 썰물은 직진과 회전으로
맞물리는 동력전달장치로 치환됐다. 르네상스 인문학의 세례를 받은 범신론자인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에 경도된 기계론자였던 레오나르도의 모든 공학적
발명은 결국 자연의 예술적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는 밀랍 날개를 발명한 다이달로스가 아들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C0%CC%C4%AB%B7%CE%BD%BA&nil_profile=newskwd&nil_id=v14074457"
target=new>이카로스
를 잃었다고 설명한다. 이카로스가 너무 높이 나는 바람에 태양의 저주로 밀랍이 녹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죽과 대나무와 삼베로 제작된 레오나르도의 비행 장치는 결코 추락할 염려가 없다. 다만 떠오르지 못했을
뿐이다.

예술가의 야심이 과학의 발걸음을 지나치게 앞질렀던 탓이었을까? 만약 레오나르도가 400년만 더 기다렸더라면 과학의 진보가
비행의 꿈을 실현하는 것을 감격스레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태양신의 황금수레가 여명과 황혼을 거느리고 세상을 한 바퀴 주유하던
시대에 나침반과 컴퍼스만으로 지구를 돌 수 있다는 확신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태어나기 한 세대 전 르네상스의 가장 위대한 발명인
원근법이 탄생했고,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1%B8%C5%D9%BA%A3%B8%A3%C5%A9&nil_profile=newskwd&nil_id=v14074457"
target=new>구텐베르크
가 금속활자로 42행 성서를 펴냈을 때 그는 겨우 두 살이었다. 그가 마흔 살이던 해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했고,레오나르도가 숨을 거둔 1519년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 유일 세계의 종언을 선포한다.


src="http://photo-media.hanmail.net/200609/18/dkbnews/20060918190013.401.9.jpg">

color=blue>01. 이탈리아 피렌체의 오르 산 미켈레 성당에 있는 난니 디 방코(Nanni di Banco)의 외벽 부조 ‘르네상스
조각공방’. 이 작품을 통해 당시 레오나르도가 발명품을 제작한 환경을 엿볼 수 있다. 02. 레오나르도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최후의
만찬’. 그가 이 그림 속에 숨긴 수많은 상징은 이후 ‘다 빈치 코드’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레오나르도는 격랑과 혼돈의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변혁과 도전의 소용돌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은 오직 진리의 먼 별빛을 응시하면서 예술과 과학의 역사를 헤쳐 나갔다. 그가 평생 꿈꾸던 이상은 자연이 감추고 있는 궁극의
원리였다. 레오나르도는 그의 노트에 이렇게 기록했다.

“별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기사제공 =
과학동아 / 이상엽 기자 narci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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